난 유난히 죽음이 두려웠다.

어릴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 때문이다.

그 일은 내게 죽음에 대한 공포, 가족의 상실, 존재의 의미에 대해

물음표를 던져주고 내가 살아오는 내내 어두운 영향을 주었다.

 

그렇게 오래 슬퍼했더니 행복하다는 게 뭔지 모르게 되었다.

마음 한 구석이 부서진채로 나는 어떤 일을 해도 누구와 만나도 진짜 나일 수 없었다.

황폐화된 마음이 결국 병을 불러왔다.

누구보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나에게 누구보다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이다.

 

그런데 이상했다.

죽음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지니 나는 한결 가벼워졌다.

아프기전엔 불행과 집착과 슬픔이 항상 있었는데

이제 죽고 싶을 정도로 크게 여겨지지 않는다.

 

오로지 나, 오로지 현재, 오로지 내 마음만 보여서 일까.

걱정도 걱정이 아니고 두려움도, 실망도 아무것도 아니다.

죽음 앞에 이런 부정적인 일과 감정은 사치니까.

행복만이 죽음을 준비하는자의 가슴에 살 수 있다.

 

어쩐지 이제 마음이 가볍다.

이제는 오래 살고 싶다.

고령에 죽는다는 건 축복이다.

우리 아빠가 노인이 된 걸 본 적은 없어서일까.

난 노인이 되고 싶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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